[야구타임스 | 이준목] 올 시즌 전까지만 해도 한화 이글스는 프로야구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있었다.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을 준우승으로 이끌며 다시 한 번 ‘국민 감독’으로 추앙받은 김인식 감독을 비롯하여 김태균, 이범호 등 한화 출신 스타들이 대표팀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WBC의 영광은 프로무대에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반년여의 세월이 흐른 지금, 정작 이들의 소속팀 한화 이글스는 올해 1994년 팀 창단 이후 첫 꼴찌를 기록하며 고통스러운 시즌을 보냈다. 전신인 빙그레 시절까지 포함하면 무려 23년만이다.
김인식 감독은 결국 한대화 삼성 수석코치에게 지휘봉을 물려주고 고문으로 물러앉아야했다. 감독 데뷔 1000승 고지의 대업을 눈앞에 두고, 팀의 세대교체 실패의 책임까지 홀로 뒤집어 쓴 채 말이다. 김태균과 이범호도 시즌 내내 잦은 부상으로 고전하며 힘겨운 시즌을 보냈다. WBC의 영웅들에게는 짧은 영광 뒤에 찾아온 시련이 너무 길었던 한해였다.

▶ 한화는 왜 꼴찌일 수밖에 없었을까?
올해로 28번째 시즌을 맞이한 프로야구에서 한화가 기록한 승률 .346(46승 3무 84패)은 역대 꼴찌 가운데 17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한국시리즈까지 올랐고, 지난해에도 시즌 막바지까지 PO진출을 다투던 한화가 이토록 갑작스럽게 몰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마운드 붕괴, 두 번째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대교체의 실패를 들 수가 있다.
알고 보면 이 세 가지 요인은 모두 같은 연결고리로 이어진다. 한화는 올 시즌 5.70의 자책점을 기록하며 8개 구단 중 최악의 수비력을 자랑(?)했는데, 이것은 역대 프로야구 단일시즌으로 치면 4번째로 나쁜 기록이다.
역시 빈약한 투수력이 발목을 잡았다. 류현진(13승 12패 3.57)이라는 걸출한 에이스를 보유했지만 그 외에는 선발과 불펜을 막론하고 믿을만한 투수가 없었다. 한화 마운드의 차세대 기둥으로 기대를 모았던 김혁민-유원상-안영명의 영건 선발진이 모두 5점대가 훌쩍 넘는 방어율을 기록하며 동반 부진에 허덕인 것이 치명타였다.
노장 투수들의 노쇠화 역시 두드러졌고, 결국 한계를 느낀 송진우와 정민철은 올 시즌 중에 각자 은퇴의 수순을 밟아야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구대성도 이미 전성기의 위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10년 전만해도 ‘투수 레전드들의 고향’으로 불리며, 막강 마운드를 앞세워 한국시리즈까지 제패한 한화로서는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어쩌면 한화는 타고투저의 허상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팀인지도 모른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다이너마이트 타선’으로 불릴 만큼 8개 구단 최강의 장타력을 자랑하는 한화였지만 정작 영양가는 별로 없었다. 올 시즌도 팀홈런 164개로 SK(166개)에 이어 2위를 차지했으나 팀 타율(.269)과 득점(657점)은 모두 리그 7위에 그쳤다.
여기에 팀타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김태균과 이범호가 시즌 중반 나란히 부상에 시달리며 주춤하자 타선의 무게감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몇몇 중심타자들의 파괴력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기동력과 팀배팅 등을 통하여 확률 높은 득점생산능력을 보인 SK, KIA, 두산 같은 상위권 팀들과 가장 대조를 이룬 부분이기도 하다. 한번 타선이 폭발하면 매섭긴 했지만 기복이 심했고, 얻은 점수만큼이나 내주는 실점도 많다보니 실속이 없었다.
▲ 김태균-이범호마저 없는 한화의 미래는?
그러나 한화의 진정한 위기는 어쩌면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인지도 모른다. 하필이면 꼴찌로 내려앉은 시즌에 전력의 핵심인 김태균과 이범호가 FA자격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현재 한화의 전력에서 이 두 선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KIA에서 최희섭-김상현, 두산에서 김동주-김현수가 차지하는 비중의 두 배 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한화가 두 선수를 모두 붙잡을 수 있는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희박해 보인다. 돌아가는 시장 상황도 불리하다. 두 선수 모두 해외 진출에 대한 의지가 확고한데다, 일본뿐만 아니라 국내 구단들까지 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 몸값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화로서는 이들 외에도 올 시즌 쏠쏠한 활약을 펼친 강동우 역시 FA를 신청했고, 투타에 걸쳐 전력을 보강해야할 자리가 넘쳐난다. 삼성과 LG 등 그동안 경제 불황의 여파로 비교적 잠잠하던 FA 시장의 ‘큰 손’들도 올해는 이를 악물로 전력보강에 뛰어들 전망이라, 외부 영입도 녹록치 않아 보인다.
일단 다음 시즌 대대적인 팀컬러의 변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화는 현재 리그에서 가장 선수층이 얇고 노쇠화 된 팀 중 하나다. 몇몇 스타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비정상적일만큼 높다보니, 이들이 부상과 슬럼프 등으로 흔들릴 경우 팀 전력까지 같이 요동친다. 류현진, 김태균, 이범호가 맹활약하던 5월까지만 해도 5할 승률 근처에서 경합하다가 이들이 하나둘씩 부상으로 흔들리면서 성적이 급격히 추락한 것이 좋은 예다.
내년 시즌 한화의 공격력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장타력에 의존하는 스타일을 바꿔야한다. 가장 절실한 것은 바로 기동력의 강화다. 한화는 올시즌 기동력을 상징하는 팀 도루가 단 69개로, 8개 구단 중 유일하게 세 자릿수를 넘어서지 못하는 ‘거북이 군단’이었다. 활발한 주루플레이가 없는 팀은 작전수행능력 역시 제한될 수밖에 없다. 강동우(27개)와 추승우(15개) 외에 베이스에서 상대 투수진을 흔들 수 있는 기동력을 갖춘 선수들을 발굴하는 것이 숙제다. 김태균과 이범호의 부재로 인한 중심타선의 약화는, 연경흠, 송광민, 양승학 같은 선수들의 성장을 통하여 분담해야한다.
한화는 시즌 마지막 한 달(8월 26일~9월 26일)동안은 11승 11패로 5할 승률을 기록하며 막판 고춧가루 부대 역할을 톡톡히 했는데, 이때의 한화는 홈런이 줄어든 대신, 활발한 베이스러닝과 팀배팅으로 득점권 찬스에서 확률 높은 야구를 선보였다. 경기 내용 면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셈. 한화가 도루와 번트를 못하는 팀이라는 것은 이미지가 만든 선입견일 뿐이다.
타선에 비하여 마운드는 오히려 희망이 있다. 젊은 투수들이 부진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험을 쌓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올 시즌 양훈과 황재규는 팀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꾸준히 불펜의 한 축을 담당하며 많이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혁민-안영명-유원상 등도 내용은 좋지 않았지만 어쨌든 28승을 합작하며 혹독한 선발수업을 받았다. 김인식 감독이 계약 마지막 해의 부진한 성적에도 1승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한 선발 로테이션을 지켜주며 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줬다는 것은, 분명 한대화 감독의 리빌딩에도 든든한 밑거름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밖에도 양승학, 허유강, 김강석 등 팀 내 유망주로 꼽히는 어린 독수리들 역시 꼴찌가 확정된 시즌 막판 꾸준한 출장경험을 쌓으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특히 신인드래프트에서 한화에 1순위로 뽑힌 고교 좌완 최대어 김용주는 프로 적응 여부에 따라 당장 다음 시즌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는 유망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물론 젊은 선수들이 당장 김태균, 이범호, 정민철, 송진우의 공백을 완벽히 메워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결국 선수들은 경험을 먹고 자란다. 두산 김경문 감독이나 KIA 조범현 감독이 일부의 비판과 의심속에서도 꾸준히 젊은 선수들을 계속 실험하며 결국 팀의 주축으로 키워낸 것이 좋은 예다. 올해의 아픔을 바탕으로 경험을 쌓은 선수들이 다음 시즌에는 한 단계 더 뛰어난 선수로 진화해준다면 한화의 미래도 마냥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결국은 기본기의 문제다. 한대화 감독은 다음 시즌 팀 재건의 방향을 수비와 주루플레이 등 기본기 강화에 맞추고 훈련량을 대폭 늘릴 것을 예고하고 있다. 문제는 시간을 두고 얼마나 일관성 있고 체계적으로 팀의 리빌딩을 진행할 수 있느냐다. 외국인 선수 영입과 트레이드 같은 몇몇 변수가 있기는 하지만, 한화는 당장 내년 시즌 급격한 전력의 향상을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팀이다. 긴 안목에서 인내와 시행착오를 감수할 각오를 가지고 한대화 감독 체제에 얼마나 힘을 실어주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 야구타임스 이준목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야구타임스 김홍석 편집인(블로그 : MLBspeci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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